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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판사는 왜 이혼 전문 변호사가 됐을까

가정법원이 기피 부서로 여겨지던 시절부터 가사 재판을 맡아 온 이야기입니다. 판사가 본 이혼 재판의 실제를 담았습니다.

부장판사는 왜 이혼 전문 변호사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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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남성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부장판사 출신이 대형로펌 대신 가사 전문 로펌을 선택한 배경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가정법원은 기피 부서였습니다

대전지방법원 4년, 의정부지방법원 3년을 거쳐 서울가정법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때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가정법원 가서 배울 것도 없다. 일반 민사나 형사를 충실히 하거나, 행정법원을 가라.

이것이 당시 주류에 가까운 조언이었습니다.

가사 전문법관을 선발하던 시기였는데 지원자가 없어서 혜택을 줘야 했습니다. 지방 근무 면제 같은 조건을 붙여야 사람이 모이는 구조였습니다.

처음 지원한 이유는 소박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 집에서 가까웠습니다
  • 형사를 하기 싫었습니다

서울가정법원이 아니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이었는데, 형사합의부는 고생이 많습니다.

큰 사건 하나가 걸리면 일주일에 재판을 서너 번 하고, 종이 기록이 방 하나를 가득 채웁니다. 한 사건의 기록이 넓은 공간을 다 덮는 규모입니다.

그런데 가사가 맞았습니다

막상 해 보니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이혼 사건은 법리 자체가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사건 수가 많아 참조할 판례도 충분합니다.

문제는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 쪽이었습니다.

사건 유형당시 상황
이혼사건 수 많음, 참조 판례 충분
상속재산분할전국적으로 사건 자체가 드묾

서울가정법원의 한 재판부에만 50건에서 100건 정도가 몰려 있었고, 다른 법원 가사부에는 열 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법리가 없으니 사건이 쌓였습니다

지방법원 가사부나 가정법원은 다양한 가사 사건을 모두 처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상속 사건에 충분히 시간을 쓰기 어려웠습니다.

법리는 어렵고, 찾아봐도 판례가 없고, 검색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건을 쌓아 두다가 조정으로 끝내게 됩니다. 조정을 하면 판결문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기준이 없으니 판단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 것입니다.

실무편람을 쓰게 된 계기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법원행정처에 실무편람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모였습니다.

지원자를 받아 여러 판사가 함께 집필했고, 서울가정법원에서 실제로 그 업무를 담당하던 사람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그 업무를 하고 있어 참여하게 됐습니다.

약 2년 동안 고치고 다듬는 작업을 했습니다.

기준이 없던 영역에 처음으로 기준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사 사건은 법리가 화려한 분야는 아닙니다. 그러나 기준이 없는 자리에서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작업이 재판을 받는 분들의 결과를 직접 바꾼다는 점에서, 계속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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